34년 만에 수사 마무리

사진=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피해자 및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피해자 및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유명한 ‘화성연쇄살인 사건’ 재수사가 1년 만에 마무리됐다.

첫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난 1986년 이후 34년 만이다.

자칫 영구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 진상이 뒤늦게나마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로 이춘재(57)도, 엉뚱한 범인을 만들어낸 당사자들도 처벌할 길이 없다.

경찰 조사결과 이춘재는 1991년까지 경기 화성군 일대에서 여성 1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다른 여성 9명을 성폭행하거나 강도질한 것으로 드러났다.

◆“변태적 성욕의 사이코패스 범행”

경기남부경찰청은 2일 브리핑을 열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범죄 동기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지만 수십 차례에 걸친 프로파일러 면담과 심리검사, 반사회적 인격 장애(사이코패스) 평가 등을 종합해 범행동기를 ‘변태적 성욕 해소’로 판단했다.

경찰은 그가 범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상위 65~85%의 성향을 보였다”면서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으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과 교도소 생활만 걱정하는 등 이중적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이춘재와 면담한 프로파일러들은 어린 시절 물놀이 도중 사망한 남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군 복무 중 느낀 성취감이 범행에 간접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했다.

군 제대 이후 단조로운 생활이 오히려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면서 사이코패스 성향을 폭발시켰다는 설명이다.

이춘재는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화성에서 잇따라 발생한 10건의 살인사건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10건 중 9건은 그동안 미제로 남아 있었다.

나머지 1건의 경우 윤모(53)씨가 범인으로 붙잡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1988년 9월16일 화성 태안읍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윤씨는 현재 수원지법에서 재심을 받고 있다.

아울러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청주 주부 살인사건’의 4건도 이춘재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특히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은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살인사건으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이번 수사에서 이춘재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사진= 1987년 1월 5차 사건이 발생한 화성 황계리 현장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 1987년 1월 5차 사건이 발생한 화성 황계리 현장에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 이춘재
사진= 이춘재

◆이춘재도, 가혹경찰도 처벌할 수 없다.

이춘재의 연쇄살인을 처벌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지막 연쇄살인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 만료된 탓이다.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완전히 폐지됐지만, 새로운 법 시행 전에 이춘재 사건의 시효가 끝나 적용받지 않는다.

앞서 이춘재는 1994년 1월 당시 20세이던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과학수사 수준이 발전한 덕에 경찰이 지난해 7월 처음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DNA 분석을 의뢰하면서 이 사건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이후 같은 해 8월 사건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고 결국 이춘재도 자백했다.

경찰은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8차 사건으로 윤씨를 조사하면서 사건은폐, 감금 등을 저지른 혐의로 당시 검사와 경찰 등 8명을 검찰에 넘겼으나 이 역시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었다.

살인 외에 이춘재가 자백한 34건의 성폭행 또는 강도 범행 중 9건을 제외한 25건에 대한 진위를 밝히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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